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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관광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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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사지

감은사는 원래 바다로 침입해 오는 왜적을 막기 위해 문무왕이 지은 절인데, 절을 짓기 시작한지 1년 만에 왕이 세상을 떠나자 아들인 신문왕이 아버지의 뜻을 받들어 절을 완공하고 ‘부왕의 큰 은혜에 감사한다.’는 뜻으로 이름 지은 것이‘감은사’이다. 문무왕은 죽어서 용으로 변해 신라를 지켰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는데, 감은사지 금당 터에는, 신문왕이 절을 지을 때 죽으면 동해의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겠다는 선왕의 유언에 따라 금당 구들장 초석 한쪽에 용이 드나들 수 있는 통로를 만들었다. 절터에는 신라시대 석탑 가운데 가장 큰 삼층석탑 두 기와 금당과 강당, 회랑을 둘렀던 흔적이 남아 있는데, 웅장하고 기품 있는 석탑은 물론이고 가람의 배치도 군더더기 없이 정연하다. 문무왕과 신라인의 호국 의지가 고스란히 드러난 듯 삼층석탑은 굳건하고 장대한 풍모다. 탑의 상륜부에는 높이 약 3.9m되는 찰주가 꽂혀있다.

경주월드

30여개의 놀이기구를 운영하고 있는 테마파크로 다소 오래된 라이드 시설중심의 위락형 주제공원이지만, 잠시 머물며 다양한 놀이기구를 즐길 수 있다. ‘늘 새로운 즐거움과 감동’을 주는 종합 휴양 테마리조트로 즐겁게 한나절을 보내기에 적합하다. 파에톤, 메가드롭, 토네이도 등이 경주월드를 대표하는 놀이기구로, 가족단위 관광객 중 어린 아이와 한번은 방문할 가치가 있다. 특히 경주 월드는 겨울에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눈썰매장이, 여름에는 젊음의 열정을 콘셉트로 하는 캘리포니아비치 워터파크가 있어 또 4계절 색다른 즐거움을 경험할 수 있다.

금장대

금장대는 봉황대와 함께 경주의 시가지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곳으로 이곳에 있던 절 혹은 건물의 이름인 “금장”을 따서 금장대(金藏臺)라고 불리고 있다. 이곳은 그 경치가 매우 빼어나 경주의 하늘을 지나가는 기러기들이 쉬었다 간다고 하여 경주의 여덟 가지 기이한 현상(三奇八怪) 가운데 하나인 금장낙안(金藏落雁)이라 불리워지던 곳이기도 하다. 이곳에는 신라시대 자비왕 때 을화라는 기생이 왕과 연희를 즐기는 도중 실수로 빠져 죽었다는 설을 비롯해 몇 가지 설화가 전해 오는 곳이다. 그리고 금장대의 아래에 만들어진 예기청소(藝妓淸沼)는 형산강의 본류인 서천과 북천이 만들어낸 것으로, 김동리의 단편소설인 <무녀도>의 배경이 되었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남산

고위산(494m)과 금오산(468m) 2개의 봉우리가 솟아 있다. 남북 8㎞, 동서 4㎞의 크기이며 완만한 동남산과 골이 깊고 가파른 서남산으로 크게 나누어진다. 40여 계곡이 있고, 동쪽에는 낭산·명활산, 서쪽에는 선도산·벽도산·옥녀봉, 북쪽에는 금강산·금학산이 솟아 있다. 뿐만 아니라 토함산 줄기가 동해를 막는 성벽 구실을 하고 있어 남산은 옛 서라벌을 지키는 요새로서 훌륭한 역할을 하였다. 경주 남산은 신라시대의 불교유적지로 널리 알려져 있다. 불교가 신라에 전파되면서 숭산신앙·암석신앙과 연관된 불교문화는 남산에 집중, 표현되었기 때문이다. 100여 곳의 절터, 80여 체의 석불, 60여 기의 석탑, 20여 기의 석등 등의 유물, 유적이 발굴되었다.

대릉원

신라 고분들이 모여 있는 대릉원은 경주 시내 한가운데 약 12만 6,500㎡의 너른 땅 위에 미추왕릉을 비롯하여 30기의 고분들이 자리 잡고 있다. 옛날무덤들 속에는 무덤 주인과 함께 수많은 껴묻거리(부장품)가 같이 묻혀 있고 때로는 무덤 주인의 시종이나 노비들이 함께 묻히는 순장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대릉원은 신라의 왕권강화가 이루어졌던 시기인 4세기에서 6세기 초까지의 무덤이라고 볼 수 있다. 천마도의 '천마총'과 대릉원이라 이름 붙이게 된 댓잎군사의 전설 이야기가 재미있는 '미추왕릉', 경주에서 가장 큰 무덤이면서 금관이 발굴된 '황남대총' 등이 모여 있다.

동궁과 월지

문무왕 674년, 삼국을 통일하고 국력이 강해지면서 궁궐도 커지게 되어 신라 왕궁의 별궁이며, 태자가 거처하는 동궁으로 사용되었는데 이는 안압지 남쪽에 신라 궁인 월성이 있어 이곳까지 자연스럽게 커진 것으로 나라의 경사가 있을 때나 귀한 손님을 맞을 때 성대한 연회를 베풀었던 곳이다. 『삼국사기』에는 안압지의 이름이 나오지 않고,‘궁 안의 못'으로만 기록되었다. 1980년대‘월지’라는 글자가 새겨진 토기 파편이 발굴되며, 본래 이름은 ‘달이 비치는 연못’이란 뜻의‘월지'라고 불렀다. 이후, 신라가 멸망하고, 고려와 조선시대에 이르러 이곳이 폐허가 되자. 시인묵객들이 연못을 보며‘화려했던 궁궐은 간데없고 기러기와 오리만 날아든다.'는 쓸쓸한 시 구절을 읊조리고 그 때부터 기러기 '안'자와 오리 '압'자를 써서 ‘안압지’로 불리게 되었다.

드림센터

드림센터는 스위트 메종, 드림 아카데미, 스포츠 파크, 드림 스페이스로 구성된 복합적 기능을 하는 공간이다. 스위트 메종은 사람과 자연이 어울리는 고품격 휴양 리조트로 Superior, Deluxe, Junior Suite, Royal Suite, Platinum Suite 5종류의 깔끔하고 현대적인 감각의 객실이 준비되어 있다. 드림아카데미는 교육이나 연수를 위한 휴양시설로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있으며, 스포츠 파크에서는 상쾌한 자연 속에서 레포츠를 즐길 수 있다. 새로운 개념의 과학박물관, 드림 스페이스는 체험과 엔터테인먼트가 공존하는 특별한 공간으로 교과서에서 배울 수 없는 과학적 원리를 체험 할 수 있으며 사이언스 뮤지엄으로서 고대 이집트 피라미드를 형상화한 것 등 신기하고 다양한 전시물들을 만날 수 있다

무열왕릉

김춘추라는 이름으로 더 익숙한 29대 태종무열왕, 삼국을 통일한 왕은 문무왕이지만 김춘추는 삼국통일의 기반을 쌓은 큰 공을 세웠다고 해서, 죽은 후에 태종이란 묘호를 붙였다. 신라에서 시호인 무열과 묘호인 태종을 함께 사용하는 유일한 왕으로 신라인들의 존경을 받았던 것이다. 김유신의 적극적인 지지로, 진골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왕위에 오른 김춘추. 특히 외교에 능숙하여 당나라와의 연합을 성사시키고 백제를 멸망시키면서 삼국 통일이라는 대업을 달성하였다. 경주에는 많은 고분이 있지만, 주인이 밝혀진 것은 드물다. 무열왕릉에 들어서며 고분의 주인을 밝히는 태종무열왕릉비, 지금은 몸돌인 비석은 사라지고, 비석을 받치고 있는 귀부와 이수만이 남아 있다.

문무대왕릉

『삼국사기』에는 문무왕이 돌아가신 이후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내가 죽은 뒤 용이 되어 불법을 받들고 나라의 평화를 지킬 터이니 나의 유해를 동해에 장사지내라.(중략) 내가 숨을 거둔 뒤에는 불로 태워 장사할 것이요, 초상 치르는 절차는 검소와 절약을 좇아라.” 문무왕은 죽어서 용이 되어 신라를 지키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동해에 자신의 시신을 화장해 뿌려달라고 했고 유언에 따라, 신라 사람들은 동해의 큰 바위섬에 장사를 지냈고 그 바위를 대왕암이라 부르게 되었다. 멀리서 보면 평범한 바위로 보이지만, 가까이 가보면 바위 한가운데가 못처럼 패여 있다. 유골을 안장한 곳이 아니라 유골을 뿌린 ‘산골처’라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문무왕은 삼국통일을 도왔던 당나라의 위협 사실을 알고, 8년에 걸쳐 당나라군을 몰아내기 위해 많은 노력 기울였다. 또한, 왜적의 동해 침입을 걱정하여 죽어서도 용왕이 되어 동해바다를 수호하겠다는 호국정신은 신라인의 마음 속 깊이 남아 설화에도 등장하고 있다.

보문관광단지

보문호를 중심으로 하는 보문관광단지는 주변지역의 수려한 자연경관과 더불어 고급호텔과 콘도, 온천, 골프장, 야외공연장, 놀이시설 등 각종 문화레저시설을 두루 갖춘 국제적인 관광단지이다. 1971년, 경주종합개발계획사업의 일환으로 종합휴양지 조성을 목적으로 개발되어, 경주지역의 역사적 특성을 살려 고대와 현대가 잘 어우러지도록 조성하였으며 전 지역이 온천지구 및 관광특구로 지정되어 있다. 고풍스럽고 은은한 맛을 풍기며 사계절 관광객이 이용할 수 있는 온천형 관광지로 우아하고 정취 있는 전통적 이미지가 창출될 수 있는 내륙형 종합관광휴양단지이며, 한국관광산업의 1번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분황사

황룡사와 담장을 같이했던 분황사, 좁은 경내에 석탑과 신라시대의 우물, 비석받침돌밖에 없지만, 선덕여왕 3년(634)에 세운 신라 명찰 중 하나로 여왕의 향기가 물씬 나는 이름으로, 향기 '분'자에 황제 '황'자를 써 분황사로 칭했다. 발굴조사로 보아 황룡사에 버금가는 크기였던 분황사는 호국사찰인 황룡사와 함께 국가의 지원을 받으며 국찰로서 큰 역할을 담당했지만, 몽골군의 침입과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예전의 모습을 잃게 되었고, 국보 제30호 '경주 분황사 모전 석탑'과, 조선시대에 세워진 보광전만이 남게 되었다.

불국사

토함산에 서남쪽에 자리 잡은 불국사는 신라인들의 과학과 미학이 이뤄낸 통일신라 문화의 정수로 평가받고 있는데, 삼국 통일 이후 문화적 역량이 높았던 경덕왕 10년(751) 당시 재상이었던 김대성이 현생의 부모를 위해 짓기 시작하여, 혜공왕 10년(774)에 완성하였다. 이후 조선 선조 26년(1593)에 왜의 침입으로 대부분의 건물이 불타버렸다. 삼국 통일 이후 문화적 역량이 높았던 경덕왕 10년(751)은 신라 문화의 황금기였고 나라도 안정되었으며 당시 신라인들은 신라가 곧 불국토 라는 강한 자부심과 신앙심으로 부처님의 영원한 궁전, 불국사를 건축하여 불국토의 염원과 이상을 조화와 균형으로 현실화 하였다.

블루원리조트

영남권 최대 4계절 워터파크 BlueOne Water Park는 폴리네시안을 테마로 전체 12,000평 부지에 실내 2,000평, 실외 8,500평, 광장 및 주차장 1,500평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하루 최대 10,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영남권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다양한 물놀이 시설과 편의시설을 갖추고 있으며, 사계절 내내 건강하게 워터파크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다. 국내 최고 높이 2.6m 파도풀 스톰웨이브 BlueOne Water Park의 대표적인 물놀이 시설은 국내 최고 높이 2.6m를 자랑하는 실외 파도풀 ‘스톰 웨이브’이다. ‘스톰 웨이브’는 국내에서 최초로 설치되는 파도풀로서 총 길이 90미터, 폭 26.6미터로 동시 수용인원 1,450명이다.

석굴암

신라의 황금기를 구가한 시절로 평가받고 있는 경덕왕(742~765)때에 수많은 불사가 집중적으로 이루어지거나 시작된다. 석굴암, 불국사의 창건, 황룡사 종, 성덕대왕신종(에밀레종) 등등 그 숱한 불사 가운데에 최고의 정점을 꼽는다면 단연 석굴암이다. 석굴암(본래 석불사)의 석실 안에는 깨달음을 얻은 석가모니와 여러 제자와 보살들이 그 깨달음의 순간을 긴장하며 지켜보고 있는 장면이 구현돼 있다. 비록 석실 안에 들어가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속속들이 볼 수 없지만, ‘깨달음’을 향해 집중된 순간의 긴장감은 1200년이 넘는 까마득한 시간이 지난 마당에도 고스란히 남아 있다. 한 시대의 작품에는 그것을 만든 사람들의 마음과 표정이 담기게 마련이라고 한다. 본존불을 비롯하여 주변의 보살과 제자들의 형상은 부처의 설법을 듣고자하는 신라인의 그 모습 그대로가 아닐까? 신라인의 마음을 헤아리며 들어선 석굴암에서는 깨달은 순간의 고요와 부처의 절대 미소에 매혹당해, 석굴암 벽 한켠에 보살이나 제자 중의 한 사람으로 자신도 모르게 붙박히는 경이로운 체험이 어렵지 않다.

석빙고

월성 내에 있는 석빙고는 조선 영조 14년(1738)에 만든 얼음 창고이다. 길이 19m, 너비 6m, 높이 5.45m의 석실은 직사각형으로 , 약 1000여 개의 돌이 쓰였고 천장 외부는 봉토의 형상으로 북쪽 성루 위에 남북으로 길게 자리하고 있다. 무지개 모양으로 만든 천장에는 공기구멍 셋이 있고, 바닥은 물이 빠질 수 있도록 홈을 파서 비스듬하게 만들었다. 출입구는 남쪽에 있고 계단을 통하여 출입하게 되어 있다. 석빙고 얼음은 높은 신분의 사람들만이 이용할 수 있었다. 또한 얼음은, 음식에 사용되는 것 이외에도, 시체의 부패를 막기 위한 장례의식과 고열환자의 열을 내려주는 치료 목적으로도 사용되었다.

성덕대왕신종

박물관에 들어서면 오른편의 종각에 매달려 있는 성덕대왕신종이 눈에 들어온다.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가장 큰 종으로 높이 3.75m, 입지름 2.27m, 두께 11∼25㎝이며, 무게는 1997년 국립경주박물관에서 정밀 측정한 결과 18.9톤으로 확인되었다. 신라 경덕왕이 아버지인 성덕왕의 공덕을 널리 알리기 위해 종을 만들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그 뒤를 이어 혜공왕이 771년에 완성하여 ‘성덕대왕신종’이라고 불렀다. 이 종은 처음에 봉덕사에 달았다고 해서 ‘봉덕사종’이라고도 하며, 아기를 시주하여 넣었다는 전설로 아기의 울음소리를 본 따 ‘에밀레종’이라고도 한다.

세계문화엑스포공원

보문관광단지 내 경주세계문화엑스포공원은 문화를 통해 새로운 시대를 개척하겠다는 강력한 의지이자 희망찬 미래를 향한 세계적인 문화축제브랜드 '경주세계문화엑스포'가 열리는 장소이다. 연중 개방되어 경주타워, 문라이트 레이저 쇼(Moonlight Laser Show), 3D 애니메이션 월드, 신라문화역사관, 세계화석박물관 등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수많은 체험거리를 맛볼 수 있다. 경주타워는 신라 삼보(三寶) 중 하나인 ‘황룡사 9층 목탑’을 음각화한 높이 82m의 경주세계문화엑스포 상징건축물이다. 꼭대기에는 전망대와 신라문화역사관이 마련돼 있으며, 야간에는 경주타워를 배경으로 환상적인 레이저쇼가 펼쳐진다.

신라밀레니엄파크

보문호와 덕동호 사이 17만 8천㎡의 부지에 신라 최고 전성기인 8세기 때 모습이 고스란히 재현되었다. 신라시대의 고건축물, 각종 공연, 공예 체험 들을 연출한 파크와 한옥 호텔 라궁, 선덕여왕 촬영장으로 구분된다. 신라 부흥기에 함께 번영했던 세계 도시 3곳의 상징물을 비교해볼 수 있고, 해상 전투가 벌어지는 대형 공연, 마상 스턴트 공연 등을 관람할 수 있다. 온천수가 흐르는 노천 족욕탕, 아이스크림을 판매하는 석빙고, 체험 시설인 공예촌과 신라 생활상을 옮겨놓은 가옥촌, 대나무 숲으로 꾸민 설화 공원 등도 있다.

주상절리

마그마에서 분출한 1000℃ 이상의 뜨거운 용암은 상대적으로 차가운 지표면과 접촉하는 하부와 차가운 공기와 접촉하는 상부에서 부터 빠르게 냉각된다. 빠르게 냉각하는 용암은 빠르게 수축하게 되어 용암의 표면에는 가뭄에 논바닥이 갈라지듯이 오각현 혹은 육각형 모양의 틈(절리)이 생기게 된다. 이렇게 냉각수축 작용으로 생긴 틈이 수직한방향으로 연장되어 발달하면 기둥모양의 틈이 생기게 되는데 이를 주상절리(柱狀節理, columnar joint)라 한다.

천마총

대릉원의 고분군 중 유일하게 공개하고 있는 155호 고분 천마총은, 옆에 위치한 황남대총을 발굴하기 위해 시범적으로 발굴한 곳인데, 당시 기술로는 황남대총 같이 거대한 규모의 무덤을 발굴하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1973년 발굴 과정에서 부장품 가운데 자작나무 껍질에 하늘을 나는 말이 그려진 말다래(말을 탄 사람의 옷에 흙이 튀지 않도록 가죽 같은 것을 말의 안장 양쪽에 늘어뜨려 놓은 기구)가 출토되어 ‘천마총(天馬塚)’이 되었는데, 최근 이 천마가‘말’을 그린 것이 아니라 ‘기린’을 그린 것이라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천마총은 5세기 말에서 6세기 초에 축조된 고분으로 추정되는데 금관, 금모자, 새날개 모양 관식, 금 허리띠, 금동으로 된 신발 등이 피장자가 착용한 그대로 출토되었다.

천성대

선덕여왕(재위 632~647) 때 만들어진 첨성대가 별을 관측하는 천문대에서부터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제단이라는 주장, 사방 어디에서 보나 똑같은 모습 그 자체로 해시계의 역할과 불교에서 말하는 세계의 중심인 수미산을 본떠 만든 건축물 등 여러 주장들이 있다. 유려한 곡선의 아름다움을 자랑하며 서 있는 첨성대는 둥근 하늘을 상징하는 원형과 네모난 땅을 상징하는 사각형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쌓은 돌이 모두 362개로, 음력 1년의 날 수와 같고, 12개의 기단은 1년의 12달을 의미해서 신라인들에게 달력의 개념이 아니었을까 하는 추측도 한다.

태종무열왕릉비

김유신과 함께 당나라를 후원세력으로 삼아 삼국통일의 기반을 다진 신라 29대왕 태종무열왕(재위 654∼661)의 위대한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석이다. 무열왕릉의 좌측에 위치하고 있는 이 비는 현재 비몸은 없어지고 거북 모양의 받침돌과 용을 새긴 머릿돌만 남았다. 길이 333cm, 너비 254cm, 높이 86cm이며, 거기에 조각된 돌 거북은 목을 높이 쳐들고 발을 기운차게 뻗으며 힘차게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으로 삼국통일을 이룩한 신라인들 진취적인 기상을 잘 보여 주고 있다. 높이가 110cm인 머릿돌 좌우에는 여섯 마리의 용이 서로 세 마리씩 뒤엉켜 여의주를 물고있는 모습이며, 그 앞면 중앙에 태종무열왕의 둘째 아들 김인문이 쓴 "태종무열대왕지비"라는 글이 돋을새김되어 있어 비의 주인공을 밝혀 주고 있다.

포석정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이곳은 궁궐의 이궁지로 왕의 별장과 같은 곳으로, 신라의 멸망이 서린 비극의 장소로도 알려지고 있다. 신라 말 경애왕이 이곳에서 연회를 벌이고 있었는데, 후백제의 견훤이 쳐들어왔고, 경애왕은 견훤의 강압에 못 이겨 자살을 하고, 천년 신라는 서서히 멸망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최근에는‘견훤이 쳐들어오고 있다는 보고를 받고도 음력 11월의 추운 겨울에 과연 그렇게 질펀하게 놀 수 있었을까’라는 의문이 제기되면서, 포석정이 단순히 유희를 즐기는 곳이 아니라 나라를 위해 순국한 사람을 기리던 곳이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야트막한 산으로 에워싸여 경관이 수려한 포석정엔 지금은 건물은 없고, 물길을 따라 술잔이 흘러갔다는 구불구불 석조 구조물만 남아 있는데, 언제 만들어졌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황성공원

봄이면 봄대로, 여름이면 여름대로, 계절마다 아름다운 숲이다. 현재 면적은 약 102만 4천㎡, 넓고도 울창한 소나무 숲은 신라시대 때 북쪽이 허하다하여 인공적으로 조성한 독산에서 유래된다. 신라 당시에는 왕들의 사냥터로, 지금은 도서관, 시민운동장, 실내체육관, 씨름장, 국궁장, 게이트볼장, 인라인스케이트를 탈 수 있는 연습장, 산책로 등과 함께 경주 시민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


경주시청 경주문화관광홈페이지(guide.gyeongju.go.kr)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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